총 세개로 나누어 관리하던 축구블로그와 여행 블로그 그리고 영화 리뷰 블로그를 통합해 관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제부터 이 블로그에 업데이트는 없고, 축구블로그를 개조한 Life in Technicolor에 여행 포스팅도 함께 올라갈 예정입니다. 이제 그쪽으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


http://lifetechnicolor.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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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맞아 미국 국경을 넘어 튤립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스카짓 (Skagit)이라는 동네를 다녀왔습니다. 제가 거주하고 있는 밴쿠버와 미국 워싱턴주의 시애틀의 중간쯤에 위치한 작은 동네인 스카짓에서 매년 4월즈음 꽤 큰 규모의 튤립축제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크게 관심을 두고 있지는 않았었는데, 곧 떠나게될 유럽여행을 대비해 큰맘먹고 구입한 DLSR의 성능을 시험도 해보고 아름다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볼겸 겸사겸사 방문을 결심했습니다. 여태껏 일반 디지털 카메라만 사용해오다가 처음으로 사용하는 DSLR이라 사용법도 아직 익숙치 않고 다루기가 어려워 유럽여행을 떠나기전 녀석과 친해질 시간이 필요했는데, 색색의 튤립들이 들판에 광활하게 펼쳐져있는 동화같은 풍경이 아주 사진찍는 연습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던 곳이었습니다. 




작은 여행을 떠나는 길, 카메라 테스트도 할겸 차 거울에 비친 모습을 찍어본 우리 와이프. 그냥 느낌대로 한번 찍어봤다고 하는데 의외로 좋은 분위기의 사진이 나왔습니다. 역시 이래서 사진은 찰나의 미학이라고 하나봅니다.




드디어 튤립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튤립 축제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축제기간이라 차가 좀 막히긴 했지만 붉은색과 노란색등 원색의 꽃들이 강렬하게 대비를 이루며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사가 내지르며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습니다. 풍경이 아름다우니 아무데나 카메라 렌즈를 갖다대고 찍어도 잘나올것이라는 생각은 큰 오산이더군요. 잘나올수있는 구도를 찾기위해 카메라셔터를 얼마나 눌러야했고, 세팅을 얼마나 바꿔가며 찍어댔는지 모릅니다. 찍을때는 맘에 들것같았던 사진들도 집에와서 확인해보면 또 건질 사진은 몇장 되지도 않고, 결국 그렇게 걸르고 걸르고 또 걸르다보니 손에 꼽을만큼의 사진만이 남고 말았습니다. 위의 사진들도 딱히 맘에 드는 사진들은 아닙니다. 따져보면 다 어딘가 하나씩 아쉬운 부분이 있는 사진들이죠. 역시 첫술에 배가 부르는일은 없는것 같습니다.




멀리서 전체적인 풍경도 담아보고 꽃 하나를 중점으로 잡아 가까이서도 찍어보고 가까운 꽃에 포커스를 줘보기도하고 먼꽃에 포커스를 줘보기도하고 여러가지 시도를 해서 다양한 사진들을 찍어보았습니다. 미세한 조리개 세팅하나, 구도의 높낮이에 따라 사진 전체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질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연발하며 한장한장 신중하게 셔터를 눌러보았습니다. 맑은 하늘의 빛을 받아 더욱 강렬한 색을 내뿜는 꽃들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다보니 정말 사진 연습을 위해 이곳을 선택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번엔 저를 피사체로한 사진입니다. 풍경을 찍는것과 꽃을 찍는것,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을 찍는것은 또 다른 세계더군요. 그렇게 사진을 찍다보니 인물사진은 사진을 찍는 사람도 어렵지만 사진을 찍히는 사람도 참 어렵더군요. 꽃밭을 배경으로 수십장의 사진을 찍는데 전문모델도 아닌 사람이 각기 다른 포즈를 취하려니 그 상상력에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기억에 남는 사진을 찍으려면 사진을 찍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찍히는 사람의 재치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여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열심히 돌아다니며 꽃들만 찍어대던중 우리의 눈을 사로잡은 귀여운 멍멍이 한마리. 용기내어 주인분께 허락을 맡은후 처음으로 강아지를 모델로 사진을 찍어보았습니다. 멍멍이라는 녀석이 계속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이는 생물인지라 찍기 쉽지 않은 피사체였는데 의외로 좋은 사진이 나와서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멍멍이의 색깔과 뒤의 빨간 튤립의 색깔이 꽤 괜찮은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멍멍이는 너무 귀엽습니다 :)




그렇게 두어시간동안 튤립밭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던중 우리는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직 축제장의 절반조차 보지 못했는데 이미 카메라 베터리가 바닥이 나버린것입니다. 바보처럼 그 전날 베터리를 완전히 충전시켜오지 않은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여행을 나설땐 반드시 베터리를 풀로 충전해야한다는 소중한 교훈과 예비 베터리를 반드시 마련해서 가야한다는 필요성을 여실히 깨달으며 남은 곳은 폰카로 대신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예비 베터리를 구입한것은 물론입니다. 그래도 유럽여행전에 충분히 사진을 찍어볼수 있는 좋은 경험을 할수있어 나름 만족했던 여행이었습니다. 우리의 목적지중 하나인 네덜란드에 가면 끝도없는 튤립밭을 구경할수 있다는데 이곳에서 찍은 경험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사진들을 남겨올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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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래간만의 여행후기 아니, 여행이라는것 자체가 정말 오래간만인것 같다. 일상에 치어 바쁘다는 이유로 꽤나 오랜시간동안 집밖을 벗어나지 못했던 우리들은 '직장'이라는 쳇바퀴같은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기위해 바쁘게 구경하고 돌아다녀야하는 '관광'보다는, 모든 일상을 등지고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며 즐길수 있는 '휴가'를 떠나기로 결정했고, 밴쿠버의 춥고 칙칙한 환경에서 벗어나기위해 햇빛을 보며 광합성도 좀 할수 있고, 따사로운 햇살아래 뒹굴며 게으름도 피울수 있는 캐러비언을 이번 목적지로 결정하게 되었다. 3년전 멕시코를 여행한 이후 캐러비안의 매력에 반해 자메이카와 쿠바등의 캐러비안 국가들을 돌았던 우리는 3년전 받았던 감동을 다시한번 느끼고 익숙한 환경아래 더욱 여유로운 휴가를 즐기기위해 다시 멕시코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것도 같은 도시 같은 리조트로. 결과적으로는 그다지 여유로운 여행이 되지는 못했지만 (여행외적인 개인적인 사유로 인해..) 역시 편안하게 먹고 마시고 즐기며 뒹굴뒹굴거리기에 멕시코만한 동네는 없는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하게 만든 여행이었다.




Riviera Maya, Mexico

사실 멕시코에 가게되면 할수있는일은 많지 않다. 특히나 우리가 지냈던 All Inclusive 리조트에 묵게되면 그 리조트안에서 벗어나는일이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이다. 그래서 관광버스를 타고 관광 포인트들을 이리저리 돌며 내려서 짧게 구경하고 빨리빨리 사진찍고 다음 포인트로! 하는걸 진정한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겐 멕시코는 정말 강력하게 비추하고싶은 관광지다. 이곳에서 할수 있는것이라고는 해변에서 선탠하기나 기껏해야 스노클링이나 해변에서 즐길수 있는 간단한 워터스포츠 (제트스키나 윈드서핑 같은), 여행을 할만한 곳이라고는 근처에 있는 마야유적지를 방문하는것 정도일뿐, 나머지 시간은 리조트안에서 밥챙겨먹고 도처에 널려있는 바에서 술 얻어다가 마시고, 아무데나 드러누워 적도의 따사롭다 못해 뜨거운 태양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보내는것이다. 그야말로 여행이 아닌 요양이라고해도 될 정도. 이곳에서 '바쁨'이라는건 허용되지 않는다. 내일의 걱정이 필요없는 팔자좋은 여유로움과 대낮에도 가시지않는 알싸한 술기운만이 존재할뿐...




우리가 묵었던 리조트는 밥과 음료 (술도 포함)가 모두 호텔 가격에 포함된 All-Inclusive 리조트였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배가고프면 밥을 먹을수 있고 원하는만큼 술을 마실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난 몇차례의 경험에서 지나친 과식과 지나친 음주가 다음날의 여행에 얼마만큼의 악영향을 미칠수 있는가에 대한 뼈저린 배움이 있었기에 술과 음식에 있어 과욕을 부리지 않을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일상생활중에는 다음날 출근을 위해 쉽사리 할수 없는 '일탈'에 가까운일이기에 하루쯤 다음날의 걱정없이 그렇게 진탕 마시고 놀고 할수 있는것도 그곳만의 매력이기도 하다. 




멕시코의 또다른 매력중 하나인 맑고 깨끗한 바닷물, 그 속에 살고 있는 바다생물들을 쉽게 만날수 있다는점이다. 실제로 리조트에 있는 해변에서 스노클링 장비를 갖고 몇발자국만 나가도 발견할수 있는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은 언제봐도 신기하고 아름답다. 특히 이번에 만난 저 노란색 아이들은 특히나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아 (오히려 사람들 따르는것 같아보였다) 더욱 신기했는데, 보통 스노클링을 하면서 물고기들을 발견하게 되면 우리를 피해 도망가는 뒷모습을 보게되는게 자연스러운 이치이나, 이 아이들과 만나게되면 나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나를 잡아 먹을듯이 돌진해 처음엔 조금 당황스럽고 겁이 날 정도였다. 때로 몰려다니는 그 수도 어찌나 많은지 정말 물반 고기반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 나중에 보니 상당수의 사람들이 리조트의 부페에서 빵이나 시리얼등을 들고나와 그 고기들에게 뿌리며 몰려들게 하고 있었는데, 아마 이 아이들도 우리가 그런 먹을것들을 뿌려줄줄 알고 우리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던것 같다.


Akumal: Place of the turtles

우리가 묵었던 리조트에서 그다지 멀지않은곳에 위치한 아쿠말 (Akumal)은 스노클링을 하기에 그야말로 천국이다. 만약 자격증이 있어 스쿠버다이빙이 가능하다면 더욱 환상적인 절경을 감상할수 있었겠지만 자격증이 없었던 우리는 스노클링으로 만족해야했다. 하지만 가이드와 함께한 1시간여의 스노클링은 정말 머리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되었다. 마야인들의 언어로 'Place of the turtles'이라는 뜻을 가진 아쿠말이라는 이름답게 정말 많은 바다거북이들을 만날수가 있었고 가이드분 덕택에 이렇게 거북이와 가까운데서 찍은 사진도 여러장 남길수 있었다.


아쿠말을 방문한건 두번째이지만 볼때마다 새롭고 신기한 느낌. 특히 바다거북이를 바다속에서 만났을때 느껴지는 그 희열과 왠지 모르게 숙연해지기까지하는 그런 느낌이 참 좋다. 아쿠말은 바다거북이로 유명한곳답게 거북이들을 보호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볼수 있었는데, 해변에 거북이들이 낳아놓은 거북이 알들을 보호하는것은 물론, 관광객들이 바다속에서 거북이를 만났을때 만지려하거나 가까이서 보기위해 다가가는 행위조차 금지하고 있었으며, 바다속 수질에 영향을 미칠수 있는 선탠오일을 바르고 입수하지 말라는 경고문까지 있을 정도였으니 아쿠말의 상징인 바다거북을 지키기위한 그들의 노력은 실로 세심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Chichen Itza: 치첸 이트사

마얀 리비에라라는 이름 답게 그곳에는 마야의 유적지들을 발견할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마야 유적지인 치첸 이트사는 지난번 멕시코시티 여행중 방문했던 테오티우아칸과는 또다른 느낌을 주는 유적지이다. 테오티우아칸은 해와 달의 피라미드가 양쪽에 우뚝 서 있고 여러 피라미드들이 웅장하게 늘어서있는 그야말로 '신전'과 같은 느낌이었다면, 치첸 이트사는 그보다 약간 규모는 작지만 뭔가 더 사람이 살았던 느낌이 많이 남아있는곳이랄까. 마야인들이 실제로 살았던 방식과 똑같은 형태로 복원된 집도 들어가볼수 있고, 그들이 별을 관측했던 천문대, 실제로 제물을 바쳤던 세노테 (Senote: 자연적으로 생성된 우물형태의 저수지), 그들만의 공놀이를 즐겼던 경기장등 그들의 삶을 엿볼수 있는 유적들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이런 마야유적지를 '유적'이라 부르지 않고 폐허(Ruins)라 부르는데 그 이유는 마야인들이 삶의 터전을 버리고 다른곳으로 이동하면서 다른 부족들로부터 자신들의 건축기술이나 문명을 지켜내기위해 흙과 나무등으로 묻어버려 폐허로 만들어놓고 떠났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정말 오랜 시간동안 그들의 유적은 기나긴 세월속에 묻혀있었고 먼훗날 멕시코지역을 지배한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어 복원될수 있었다. 워낙 오랜시간동안 자연속에 방치되어있었던 터라 복구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지만 워낙 뛰어났던 마야인들의 건축기술탓인지 많은 건물들이 여전히 견고하게 보존되어 있어 놀라움을 금할수가 없었다.


마지막에 보이는곳이 바로 그 시절 실제로 살아있는 제물을 바쳤던 세노테이다. 그냥 자연적으로 생긴 우물일 뿐이지만 그런 역사때문인지 주변에서 왠지 스산한 기분이들기도 하고 뭔가 기분이 좋지만은 않은 장소이다. 그들이 실제로 제물(가장 영혼이 순수하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이 산채로 제물로 바쳐졌다고 한다)을 바쳤던 제단까지 그대로 남아있어 안타깝고 숙연한 기분마저 드는곳이다. 가이드투어를 했던지라 주어진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탓도 있었지만 그렇게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는곳이어서 금방 자리를 떴던 기억이 있다. 


Tulum: 툴룸

마얀 리비에라의 대표적인 유적지중 하나인 툴룸은 독특하게도 바닷가를 따라 지어져있는 유적이다. 툴룸 방문은 가이드를 대동하지 않고 둘이서만 돌아보았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했지만 선감상 후조사에 의하면 이곳은 군사적인 목적으로 지어진 요새라고 한다. 이곳은 상업이 매우 발달했던 지역으로 배들이 자주 드나들며 거래가 빈번하게 벌어졌던곳이라고 하는데, 각종 진귀한 물건들이 모여있는곳이라 약탈 또한 빈번하게 일어나곤 했기 때문에 그를 방지하기위해 세워진것이 바로 이 툴룸이라는 요새라고 한다. 치첸 이트사보다도 작은 아담한 규모이지만 언덕위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지역에 지어져있어 그 당시 요새로써의 역할을 충분히 해줬을것 같은 느낌이다. 그 덕에 현재는 정말 아름다운 풍경들을 한눈에 바라볼수 있는 아주 좋은 관광지가 되었고...


사실 툴룸의 유적 자체는 크게 볼품은 없다. 애초에 요새의 목적으로 지어진곳이기 때문에 건물들의 특색이 없고 잘못보면 그냥 돌무더기처럼 보이기도 하는 건축물들 일색. 하지만 이곳의 진짜 매력은 먼 수평선까지 한눈에 들여다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유적 아래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잠시 해수욕을 즐길수 있는 아름다운 해변도 있다. 그 덕에 우리도 짧게나마 해변에서 물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수 있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 파도가 높아 스노클링을 하기는 무리였지만 파도타기가 아주 재미졌던 곳이었다  -_-b


이번 여행은 이래저래 참 아쉬움이 많이 남는 여행이었다. 여행 직전 벌어진 사건덕에 맘편히 쉬려고 했던 우리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것부터 시작해, 우리가 여행을 했던 그 시기가 딱 우기에 걸쳐지는 바람에 여행기간 10일중 일주일 정도는 반나절동안 우중충한 전형적인 허리케인시즌의 날씨속에 보내야 했으며, 낚시를 하겠다고 나섰던 어느날엔 도중에 갑작스럽게 폭풍우를 만나 재난영화의 한장면을 직접 체험하기도 했고, 진이 다 빠져버릴 정도로 더웠던 치첸 이트사와 바야돌리드 투어등 갖가지 악조건에 시달리며 보낸 여행이었지만 이 또한 모두 시간이 지나면 추억으로 남게될것이다. 힘들고 고된 여행일수록 더욱 기억에 오래 남는법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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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떠난 이번 겨울 첫 보드여행. 휘슬러는 밴쿠버와 차로 약 한시간반에서 두시간정도만 달리면 갈 수 있는곳이라 맘만 먹으면 당일치기로도 갈수도 있는 곳이다. 나와 사모님 둘만 갈때는 당일치기로 빡세게 다녀오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일행들도 함께 가는 여행이고, 시즌 첫 보드이니만큼 몸을 사려 1박 2일로 다녀오기로 했다. 날씨는 겨울답게 쌀쌀한 날씨였지만 비만 오고 우중충한 밴쿠버와는 달리 11월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소복하게 쌓여 절경을 만들어내고 있는 휘슬러의 경치는 세계 최고의 스키리조트다운 웅장한 모습이었다. 



날씨탓에 구름이 조금 많이 끼어있어 시야를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는 했지만 눈과 구름이 한데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절경은 위에서 바라보면 그 압도적인 스케일에 감탄을 하게 마련이다. 사람은 거대한 자연앞에 맞딱드리게 되면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 존재인가를 느낀다고들 하는데, 휘슬러의 정상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높은 산들을 둘러보면 그런 기분이 든다. 




거리상으로는 겨우 한시간남짓 떨어져있을 뿐이지만 바쁜 일상에 치어 살아가다보면 그렇게 가까운곳에 있음에도 참 가기 어려운곳이 또 휘슬러이다. 이번 겨울에는 특히 일들이 많을것 같아 얼마나 자주갈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참 열심히도 탔다. 마음 같아서는 둘째날도 강행하고 싶었지만 역시 이제 더이상 젊은 나이도 아닌만큼 몸을 사려 첫째날만 열심히 타는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아직까지 후유증으로 허벅다리에 통증이 남아있지만 사방이 뻥뚫린 광활한 설원을 가르며 내려올때의 그 짜릿함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런 스노보드의 짜릿한 매력때문에 이렇게 매년 휘슬러를 찾게 되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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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저 안전한 리조트 안에서 편안하게 지내고 오자는 취지에서 계획했던 북중미의 쿠바여행. 하지만 편안하기만 할것이라고 예상했던 일주일간의 쿠바여행의 끝은 생각만큼 그렇게 개운할수만은 없었다. 북중미 카리브해의 어떤 국가를 가더라도 리조트안쪽의 세계와는 판이하게 다른 현지인들의 비참한 생활에 충격을 받게되는건 어쩔수 없는 그들의 현실이라 예상했던 일이지만, 쿠바의 경우는 그 정도가 어떤 국가들보다도 특히 심각했다. 백옥같이 아름답게 펼쳐진 백사장. 술과 음식이 넘쳐 흐르는 자유로운 리조트를 한발자국만 벗어나면, 공산주의 이념이 갖고있는 모순에 철저하게 희생당하고 있는 쿠바 국민들의 비참한 현실을 만날수 있다. 쿠바의 상징과도 같은 체게바라와 박물관에나 가야 볼수 있을법한 멋스러운 올드카들. 사진으로 볼때는 멋지기 그지 없지만 쿠바 국민들의 현실속에서 그것들을 발견했을땐 더이상 멋지다는 생각을 할수만은 없었다. 제대로만 운영된다면 가장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건설할수 있는 이념인 공산주의가 갖고 있는 모순을 온몸으로 감당해내고 있는 쿠바국민들의 멈춰버린 시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쿠바 어디를 가도 발견할 수 있는 체게바라. 쿠바 혁명군의 영웅. 하지만 이제 더이상 쿠바인들에게 그의 얼굴은 혁명과 자유를 갈망하는 영웅의 얼굴이 아닌 티셔츠와 모자, 열쇠고리, 냉장고자석등에 새겨진 쿠바인들의 가장 좋은 돈벌이수단이었으며 외국인 관광객들을 불러모으는 관광상품일 뿐이었다. 물론 체게바라라는 인물이 쿠바역사에 끼친 영향은 그야말로 지대한것이 사실이고 국민들 또한 그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심을 갖고 있는것도 맞지만, 쿠바국민들에게 지금 필요한건 체게바라의 정신이 아닌 자신들을 억누르고 있는 탄압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하루라도 편하게 살아갈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 그리고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일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더이상 길거리에 널려있는 체게바라와 올드카를 그저 신기한 시선으로만 바라볼수은 없었다.




1960년 미국의 경제봉쇄 이후에 발전이 완전하게 멈춰버린 기이한 역사때문에 쿠바의 환경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날아온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거리를 걷다보면 나라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처럼 꾸며진 느낌이 든다. 하지만 관리가 잘 되어있는 고급스러운 박물관이 아닌 몇십년동안 방치되어 곳곳이 망가지고 녹슬어버린 버려진 박물관 같은 느낌. 그곳에 갑자기 사람들이 나타나서 살아가기 시작한것 같은 그런 느낌. 난생 처음 보는 그런 광경이 낯설고 신기했지만 어딘가 계속해서 짠한 느낌이 드는건 어쩔수가 없었다. 길거리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눈에서, 식당에서 한두푼의 팁을 위해 한시간내내 아름다운 연주를 멈추지 않는 밴드 아저씨들의 눈에서, 자유를 억압당한채 살아간 수십년의 세월에 대한 설움이 고스란히 비춰졌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쿠바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만 얘기했지만, 북중미 카리브해 한복판에 위치한 나라답게 쿠바는 천혜의 자연을 보유하고 있었다. 리조트 앞에 끝없이 펼쳐진 바다는 에메랄드 색깔로 화려하게 물들어 있었고 (스노클링으로 몇번의 탐사를 거친 결과 쿠바 근처 바다에는 물고기가 많지는 않았다. 겨울이라 그랬나.) 눈부신 햇살은 그 밑에서 여유롭게 한잠 편하게 늘어져 잘 수 있을정도로 충분히 따사로왔다. 비록 마지막 며칠은 날씨가 갑자기 변덕을 부리면서 기온이 뚝 떨어져버리는 바람에 그런 여유로움을 더 많이 느끼지 못한것이 아쉬웠지만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평온하고 게으른 생활을 즐겨보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애잔한 바깥세상과는 달리 리조트 안쪽에서의 생활을 몇차례의 불미스러운 사건들을 빼고는 아주 여유롭고 편안한 생활을 즐길수 있었다. 물론 여행을 들어오기전 다 돈을 내고 들어온것이니 공짜는 아니지만 내가 맘만 먹으면 가서 먹고 마실수 있는 음식과 술들이 풍족하게 있는 환경이 아마도 마음까지 여유롭고 풍족하게 만들어준것 같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져갔다. 세계 각국에서 날아온 사람들. 영어보다는 다른 언어가 더 편한 사람들. 하지만 여유로운 생활에 마음까지 여유로워진 사람들의 마음은 타인을 향해 활짝 열려있었고, 리조트안에서 지내는 일주일의 시간동안 마주친 여러 사람들이 마치 오랫동안 알고지낸 동네사람들처럼 느껴질정도로 친숙해져버렸다. 여행의 마지막날, 이런 친숙한곳을 떠나 현실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 여유로움을 떠나 각박한 현실속으로 다시 되돌아가야한다는 그런 아쉬움에 더욱 떠나고 싶지 않았던 쿠바. 하지만 그곳에서 목격했던 쿠바인들의 슬픈 현실. 그리고 그런 현실과 맞물려 겪었던 몇차례의 불미스러운 사건들덕에 다시 쿠바라는 나라를 여행지로 선택하는 일은 없을것 같은 느낌이다. 독특한 역사적인 배경으로 인해 많은 흥미로운 볼거리들을 제공하는 매력적인 나라이긴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쿠바국민들의 비참한 현실을 두번다시는 목격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편안한 리조트안에서의 생활을 만끽하고 싶다면 멕시코나 자메이카를 선택하게 될것 같다. 그곳에도 물론 리조트 안쪽과 바깥쪽의 세상이 천지차이인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적어도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서는 비참함이나 서러움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그들에게 주어진 천혜의 자연을 마음껏 즐길수 있는 '자유'가 있었기 때문일듯 싶다. 쿠바라는 나라를 북중미의 여행지중 첫번째로 선택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결사코 뜯어 말리고 싶을 지경이다. 많은것을 생각하게 하고 느낀점도 많지만 결코 쉽지 않은 마음의 짐을 안고 돌아오게 될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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