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그저 안전한 리조트 안에서 편안하게 지내고 오자는 취지에서 계획했던 북중미의 쿠바여행. 하지만 편안하기만 할것이라고 예상했던 일주일간의 쿠바여행의 끝은 생각만큼 그렇게 개운할수만은 없었다. 북중미 카리브해의 어떤 국가를 가더라도 리조트안쪽의 세계와는 판이하게 다른 현지인들의 비참한 생활에 충격을 받게되는건 어쩔수 없는 그들의 현실이라 예상했던 일이지만, 쿠바의 경우는 그 정도가 어떤 국가들보다도 특히 심각했다. 백옥같이 아름답게 펼쳐진 백사장. 술과 음식이 넘쳐 흐르는 자유로운 리조트를 한발자국만 벗어나면, 공산주의 이념이 갖고있는 모순에 철저하게 희생당하고 있는 쿠바 국민들의 비참한 현실을 만날수 있다. 쿠바의 상징과도 같은 체게바라와 박물관에나 가야 볼수 있을법한 멋스러운 올드카들. 사진으로 볼때는 멋지기 그지 없지만 쿠바 국민들의 현실속에서 그것들을 발견했을땐 더이상 멋지다는 생각을 할수만은 없었다. 제대로만 운영된다면 가장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건설할수 있는 이념인 공산주의가 갖고 있는 모순을 온몸으로 감당해내고 있는 쿠바국민들의 멈춰버린 시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쿠바 어디를 가도 발견할 수 있는 체게바라. 쿠바 혁명군의 영웅. 하지만 이제 더이상 쿠바인들에게 그의 얼굴은 혁명과 자유를 갈망하는 영웅의 얼굴이 아닌 티셔츠와 모자, 열쇠고리, 냉장고자석등에 새겨진 쿠바인들의 가장 좋은 돈벌이수단이었으며 외국인 관광객들을 불러모으는 관광상품일 뿐이었다. 물론 체게바라라는 인물이 쿠바역사에 끼친 영향은 그야말로 지대한것이 사실이고 국민들 또한 그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심을 갖고 있는것도 맞지만, 쿠바국민들에게 지금 필요한건 체게바라의 정신이 아닌 자신들을 억누르고 있는 탄압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하루라도 편하게 살아갈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 그리고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일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더이상 길거리에 널려있는 체게바라와 올드카를 그저 신기한 시선으로만 바라볼수은 없었다.




1960년 미국의 경제봉쇄 이후에 발전이 완전하게 멈춰버린 기이한 역사때문에 쿠바의 환경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날아온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거리를 걷다보면 나라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처럼 꾸며진 느낌이 든다. 하지만 관리가 잘 되어있는 고급스러운 박물관이 아닌 몇십년동안 방치되어 곳곳이 망가지고 녹슬어버린 버려진 박물관 같은 느낌. 그곳에 갑자기 사람들이 나타나서 살아가기 시작한것 같은 그런 느낌. 난생 처음 보는 그런 광경이 낯설고 신기했지만 어딘가 계속해서 짠한 느낌이 드는건 어쩔수가 없었다. 길거리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눈에서, 식당에서 한두푼의 팁을 위해 한시간내내 아름다운 연주를 멈추지 않는 밴드 아저씨들의 눈에서, 자유를 억압당한채 살아간 수십년의 세월에 대한 설움이 고스란히 비춰졌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쿠바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만 얘기했지만, 북중미 카리브해 한복판에 위치한 나라답게 쿠바는 천혜의 자연을 보유하고 있었다. 리조트 앞에 끝없이 펼쳐진 바다는 에메랄드 색깔로 화려하게 물들어 있었고 (스노클링으로 몇번의 탐사를 거친 결과 쿠바 근처 바다에는 물고기가 많지는 않았다. 겨울이라 그랬나.) 눈부신 햇살은 그 밑에서 여유롭게 한잠 편하게 늘어져 잘 수 있을정도로 충분히 따사로왔다. 비록 마지막 며칠은 날씨가 갑자기 변덕을 부리면서 기온이 뚝 떨어져버리는 바람에 그런 여유로움을 더 많이 느끼지 못한것이 아쉬웠지만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평온하고 게으른 생활을 즐겨보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애잔한 바깥세상과는 달리 리조트 안쪽에서의 생활을 몇차례의 불미스러운 사건들을 빼고는 아주 여유롭고 편안한 생활을 즐길수 있었다. 물론 여행을 들어오기전 다 돈을 내고 들어온것이니 공짜는 아니지만 내가 맘만 먹으면 가서 먹고 마실수 있는 음식과 술들이 풍족하게 있는 환경이 아마도 마음까지 여유롭고 풍족하게 만들어준것 같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져갔다. 세계 각국에서 날아온 사람들. 영어보다는 다른 언어가 더 편한 사람들. 하지만 여유로운 생활에 마음까지 여유로워진 사람들의 마음은 타인을 향해 활짝 열려있었고, 리조트안에서 지내는 일주일의 시간동안 마주친 여러 사람들이 마치 오랫동안 알고지낸 동네사람들처럼 느껴질정도로 친숙해져버렸다. 여행의 마지막날, 이런 친숙한곳을 떠나 현실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 여유로움을 떠나 각박한 현실속으로 다시 되돌아가야한다는 그런 아쉬움에 더욱 떠나고 싶지 않았던 쿠바. 하지만 그곳에서 목격했던 쿠바인들의 슬픈 현실. 그리고 그런 현실과 맞물려 겪었던 몇차례의 불미스러운 사건들덕에 다시 쿠바라는 나라를 여행지로 선택하는 일은 없을것 같은 느낌이다. 독특한 역사적인 배경으로 인해 많은 흥미로운 볼거리들을 제공하는 매력적인 나라이긴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쿠바국민들의 비참한 현실을 두번다시는 목격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편안한 리조트안에서의 생활을 만끽하고 싶다면 멕시코나 자메이카를 선택하게 될것 같다. 그곳에도 물론 리조트 안쪽과 바깥쪽의 세상이 천지차이인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적어도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서는 비참함이나 서러움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그들에게 주어진 천혜의 자연을 마음껏 즐길수 있는 '자유'가 있었기 때문일듯 싶다. 쿠바라는 나라를 북중미의 여행지중 첫번째로 선택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결사코 뜯어 말리고 싶을 지경이다. 많은것을 생각하게 하고 느낀점도 많지만 결코 쉽지 않은 마음의 짐을 안고 돌아오게 될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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