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래간만의 여행후기 아니, 여행이라는것 자체가 정말 오래간만인것 같다. 일상에 치어 바쁘다는 이유로 꽤나 오랜시간동안 집밖을 벗어나지 못했던 우리들은 '직장'이라는 쳇바퀴같은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기위해 바쁘게 구경하고 돌아다녀야하는 '관광'보다는, 모든 일상을 등지고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며 즐길수 있는 '휴가'를 떠나기로 결정했고, 밴쿠버의 춥고 칙칙한 환경에서 벗어나기위해 햇빛을 보며 광합성도 좀 할수 있고, 따사로운 햇살아래 뒹굴며 게으름도 피울수 있는 캐러비언을 이번 목적지로 결정하게 되었다. 3년전 멕시코를 여행한 이후 캐러비안의 매력에 반해 자메이카와 쿠바등의 캐러비안 국가들을 돌았던 우리는 3년전 받았던 감동을 다시한번 느끼고 익숙한 환경아래 더욱 여유로운 휴가를 즐기기위해 다시 멕시코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것도 같은 도시 같은 리조트로. 결과적으로는 그다지 여유로운 여행이 되지는 못했지만 (여행외적인 개인적인 사유로 인해..) 역시 편안하게 먹고 마시고 즐기며 뒹굴뒹굴거리기에 멕시코만한 동네는 없는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하게 만든 여행이었다.




Riviera Maya, Mexico

사실 멕시코에 가게되면 할수있는일은 많지 않다. 특히나 우리가 지냈던 All Inclusive 리조트에 묵게되면 그 리조트안에서 벗어나는일이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이다. 그래서 관광버스를 타고 관광 포인트들을 이리저리 돌며 내려서 짧게 구경하고 빨리빨리 사진찍고 다음 포인트로! 하는걸 진정한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겐 멕시코는 정말 강력하게 비추하고싶은 관광지다. 이곳에서 할수 있는것이라고는 해변에서 선탠하기나 기껏해야 스노클링이나 해변에서 즐길수 있는 간단한 워터스포츠 (제트스키나 윈드서핑 같은), 여행을 할만한 곳이라고는 근처에 있는 마야유적지를 방문하는것 정도일뿐, 나머지 시간은 리조트안에서 밥챙겨먹고 도처에 널려있는 바에서 술 얻어다가 마시고, 아무데나 드러누워 적도의 따사롭다 못해 뜨거운 태양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보내는것이다. 그야말로 여행이 아닌 요양이라고해도 될 정도. 이곳에서 '바쁨'이라는건 허용되지 않는다. 내일의 걱정이 필요없는 팔자좋은 여유로움과 대낮에도 가시지않는 알싸한 술기운만이 존재할뿐...




우리가 묵었던 리조트는 밥과 음료 (술도 포함)가 모두 호텔 가격에 포함된 All-Inclusive 리조트였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배가고프면 밥을 먹을수 있고 원하는만큼 술을 마실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난 몇차례의 경험에서 지나친 과식과 지나친 음주가 다음날의 여행에 얼마만큼의 악영향을 미칠수 있는가에 대한 뼈저린 배움이 있었기에 술과 음식에 있어 과욕을 부리지 않을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일상생활중에는 다음날 출근을 위해 쉽사리 할수 없는 '일탈'에 가까운일이기에 하루쯤 다음날의 걱정없이 그렇게 진탕 마시고 놀고 할수 있는것도 그곳만의 매력이기도 하다. 




멕시코의 또다른 매력중 하나인 맑고 깨끗한 바닷물, 그 속에 살고 있는 바다생물들을 쉽게 만날수 있다는점이다. 실제로 리조트에 있는 해변에서 스노클링 장비를 갖고 몇발자국만 나가도 발견할수 있는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은 언제봐도 신기하고 아름답다. 특히 이번에 만난 저 노란색 아이들은 특히나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아 (오히려 사람들 따르는것 같아보였다) 더욱 신기했는데, 보통 스노클링을 하면서 물고기들을 발견하게 되면 우리를 피해 도망가는 뒷모습을 보게되는게 자연스러운 이치이나, 이 아이들과 만나게되면 나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나를 잡아 먹을듯이 돌진해 처음엔 조금 당황스럽고 겁이 날 정도였다. 때로 몰려다니는 그 수도 어찌나 많은지 정말 물반 고기반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 나중에 보니 상당수의 사람들이 리조트의 부페에서 빵이나 시리얼등을 들고나와 그 고기들에게 뿌리며 몰려들게 하고 있었는데, 아마 이 아이들도 우리가 그런 먹을것들을 뿌려줄줄 알고 우리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던것 같다.


Akumal: Place of the turtles

우리가 묵었던 리조트에서 그다지 멀지않은곳에 위치한 아쿠말 (Akumal)은 스노클링을 하기에 그야말로 천국이다. 만약 자격증이 있어 스쿠버다이빙이 가능하다면 더욱 환상적인 절경을 감상할수 있었겠지만 자격증이 없었던 우리는 스노클링으로 만족해야했다. 하지만 가이드와 함께한 1시간여의 스노클링은 정말 머리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되었다. 마야인들의 언어로 'Place of the turtles'이라는 뜻을 가진 아쿠말이라는 이름답게 정말 많은 바다거북이들을 만날수가 있었고 가이드분 덕택에 이렇게 거북이와 가까운데서 찍은 사진도 여러장 남길수 있었다.


아쿠말을 방문한건 두번째이지만 볼때마다 새롭고 신기한 느낌. 특히 바다거북이를 바다속에서 만났을때 느껴지는 그 희열과 왠지 모르게 숙연해지기까지하는 그런 느낌이 참 좋다. 아쿠말은 바다거북이로 유명한곳답게 거북이들을 보호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볼수 있었는데, 해변에 거북이들이 낳아놓은 거북이 알들을 보호하는것은 물론, 관광객들이 바다속에서 거북이를 만났을때 만지려하거나 가까이서 보기위해 다가가는 행위조차 금지하고 있었으며, 바다속 수질에 영향을 미칠수 있는 선탠오일을 바르고 입수하지 말라는 경고문까지 있을 정도였으니 아쿠말의 상징인 바다거북을 지키기위한 그들의 노력은 실로 세심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Chichen Itza: 치첸 이트사

마얀 리비에라라는 이름 답게 그곳에는 마야의 유적지들을 발견할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마야 유적지인 치첸 이트사는 지난번 멕시코시티 여행중 방문했던 테오티우아칸과는 또다른 느낌을 주는 유적지이다. 테오티우아칸은 해와 달의 피라미드가 양쪽에 우뚝 서 있고 여러 피라미드들이 웅장하게 늘어서있는 그야말로 '신전'과 같은 느낌이었다면, 치첸 이트사는 그보다 약간 규모는 작지만 뭔가 더 사람이 살았던 느낌이 많이 남아있는곳이랄까. 마야인들이 실제로 살았던 방식과 똑같은 형태로 복원된 집도 들어가볼수 있고, 그들이 별을 관측했던 천문대, 실제로 제물을 바쳤던 세노테 (Senote: 자연적으로 생성된 우물형태의 저수지), 그들만의 공놀이를 즐겼던 경기장등 그들의 삶을 엿볼수 있는 유적들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이런 마야유적지를 '유적'이라 부르지 않고 폐허(Ruins)라 부르는데 그 이유는 마야인들이 삶의 터전을 버리고 다른곳으로 이동하면서 다른 부족들로부터 자신들의 건축기술이나 문명을 지켜내기위해 흙과 나무등으로 묻어버려 폐허로 만들어놓고 떠났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정말 오랜 시간동안 그들의 유적은 기나긴 세월속에 묻혀있었고 먼훗날 멕시코지역을 지배한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어 복원될수 있었다. 워낙 오랜시간동안 자연속에 방치되어있었던 터라 복구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지만 워낙 뛰어났던 마야인들의 건축기술탓인지 많은 건물들이 여전히 견고하게 보존되어 있어 놀라움을 금할수가 없었다.


마지막에 보이는곳이 바로 그 시절 실제로 살아있는 제물을 바쳤던 세노테이다. 그냥 자연적으로 생긴 우물일 뿐이지만 그런 역사때문인지 주변에서 왠지 스산한 기분이들기도 하고 뭔가 기분이 좋지만은 않은 장소이다. 그들이 실제로 제물(가장 영혼이 순수하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이 산채로 제물로 바쳐졌다고 한다)을 바쳤던 제단까지 그대로 남아있어 안타깝고 숙연한 기분마저 드는곳이다. 가이드투어를 했던지라 주어진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탓도 있었지만 그렇게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는곳이어서 금방 자리를 떴던 기억이 있다. 


Tulum: 툴룸

마얀 리비에라의 대표적인 유적지중 하나인 툴룸은 독특하게도 바닷가를 따라 지어져있는 유적이다. 툴룸 방문은 가이드를 대동하지 않고 둘이서만 돌아보았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했지만 선감상 후조사에 의하면 이곳은 군사적인 목적으로 지어진 요새라고 한다. 이곳은 상업이 매우 발달했던 지역으로 배들이 자주 드나들며 거래가 빈번하게 벌어졌던곳이라고 하는데, 각종 진귀한 물건들이 모여있는곳이라 약탈 또한 빈번하게 일어나곤 했기 때문에 그를 방지하기위해 세워진것이 바로 이 툴룸이라는 요새라고 한다. 치첸 이트사보다도 작은 아담한 규모이지만 언덕위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지역에 지어져있어 그 당시 요새로써의 역할을 충분히 해줬을것 같은 느낌이다. 그 덕에 현재는 정말 아름다운 풍경들을 한눈에 바라볼수 있는 아주 좋은 관광지가 되었고...


사실 툴룸의 유적 자체는 크게 볼품은 없다. 애초에 요새의 목적으로 지어진곳이기 때문에 건물들의 특색이 없고 잘못보면 그냥 돌무더기처럼 보이기도 하는 건축물들 일색. 하지만 이곳의 진짜 매력은 먼 수평선까지 한눈에 들여다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유적 아래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잠시 해수욕을 즐길수 있는 아름다운 해변도 있다. 그 덕에 우리도 짧게나마 해변에서 물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수 있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 파도가 높아 스노클링을 하기는 무리였지만 파도타기가 아주 재미졌던 곳이었다  -_-b


이번 여행은 이래저래 참 아쉬움이 많이 남는 여행이었다. 여행 직전 벌어진 사건덕에 맘편히 쉬려고 했던 우리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것부터 시작해, 우리가 여행을 했던 그 시기가 딱 우기에 걸쳐지는 바람에 여행기간 10일중 일주일 정도는 반나절동안 우중충한 전형적인 허리케인시즌의 날씨속에 보내야 했으며, 낚시를 하겠다고 나섰던 어느날엔 도중에 갑작스럽게 폭풍우를 만나 재난영화의 한장면을 직접 체험하기도 했고, 진이 다 빠져버릴 정도로 더웠던 치첸 이트사와 바야돌리드 투어등 갖가지 악조건에 시달리며 보낸 여행이었지만 이 또한 모두 시간이 지나면 추억으로 남게될것이다. 힘들고 고된 여행일수록 더욱 기억에 오래 남는법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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